18 6월 2026

단 한 번의 실착이 승부를 가를 때: 흑백의 반상에서 미래 비즈니스를 읽다

스포츠의 세계는 냉혹하다. 특히 오직 두뇌의 힘만으로 격돌하는 마인드 스포츠에서는 찰나의 방심이 곧 치명상으로 이어진다. 최근 서울과 홍콩에서 연달아 들려온 두 가지 소식은 종목은 달라도 결국 ‘전략’이라는 하나의 굵직한 맥락으로 이어져 있다. 바둑판 위에서의 치열한 수읽기와 체스판에서 파생된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지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259수와 172수째의 뼈아픈 균열

먼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펼쳐진 제30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1국. 한국의 신민준 9단과 일본 이치리키 료 9단의 대결은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백을 잡은 신민준은 초반 하변 백 대마 타개에 깔끔하게 성공하며 기선을 제압했고, 중반 상변 전투에서도 흑을 압박하며 완연한 우세를 점하는 듯했다.

하지만 견고하게 쌓아 올린 탑은 172수째, 단 한 번의 실착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피 냄새를 맡은 이치리키는 백의 엷은 곳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당황한 신민준의 연이은 실수까지 겹치며 국면은 순식간에 요동쳤다. 결국 패싸움 끝에 중앙 백 요석이 떨어져 나가면서 판이 뒤집혔고, 259수 만에 백 불계패라는 뼈아픈 결과가 나왔다. 이치리키는 “중앙 석 점을 잡고 나서야 역전을 직감했다”고 털어놨다. 다잡은 판을 놓친 신민준은 남은 2, 3국을 모두 이겨야 하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단 한 번의 오판이 기존의 완벽했던 빌드업을 모조리 무너뜨린 셈이다.

수읽기의 철학, 비즈니스 생태계를 관통하다

이처럼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치명적인 오판과 찰나의 기회 포착은 현대 비즈니스 리더들이 겪는 고뇌와 기막히게 닿아있다. 바다 건너 홍콩에서 열린 ‘체크메이트: 전략의 미래’ 오찬 행사는 정확히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2026년 6월 홍콩에서 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FIDE 세계팀 래피드 및 블리츠 체스 챔피언십을 앞두고 마련된 이 자리에는 세계 체스 랭킹 1위 망누스 칼센과 웹3 거물인 애니모카 브랜즈의 얏 시우 회장이 마주 앉았다. 이들이 홍콩의 재계 및 기술 리더들과 나눈 대화의 핵심은 체스의 원리가 어떻게 기업의 의사결정과 리더십, 그리고 AI로 대변되는 첨단 기술 혁신에 적용될 수 있는가였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최선의 한 수를 찾아내는 과정은 제한된 시간 안에 체스 기물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패턴의 뇌 구조를 요구한다. 칼센은 “전 세계의 사람과 아이디어가 모여드는 홍콩은 전략과 경쟁이라는 공통분모로 사람들을 묶어내는 체스와 무척 닮았다”고 평했다. 전통적인 보드게임이 애니체스(Anichess) 같은 차세대 게임 생태계로 진화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현상 역시, 낡은 룰 속에서 혁신을 찾아내는 흥미로운 사례다.

결국 259수 만에 희비가 엇갈린 LG배 결승전이든, 총상금 50만 유로를 놓고 전 세계 그랜드마스터와 아마추어가 한 팀으로 얽히게 될 2026년의 체스 챔피언십이든 본질은 궤를 같이한다. 위기 상황에서의 냉정한 판단력,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를 만회하려는 처절한 복구 능력,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묘수. 사각의 보드 위에서 단련된 이 지독하고 정교한 전략적 사고야말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