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패션위크가 또 한 번 스웨덴 특유의 날 선 디자인 역량을 증명하며 막을 내렸다. 종교적인 모티프를 도발적으로 비틀어낸 굴보(Gulbo)의 라텍스 오프닝부터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미니멀리즘을 보여준 레오니(Leoní)의 클로징까지. 이번 시즌은 로컬 패션 씬이 품고 있는 스펙트럼의 양극단을 오갔고, 소호 하우스에서 열린 다분히 절충주의적인 피날레 파티는 “그 자리에 있어야만 알 수 있는” 특유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수많은 쇼 중에서도 이번 위크를 관통하는 가장 결정적인 모먼트는 단연 A-DSGN의 데뷔 무대였다. 사실 인플루언서 기반의 브랜드가 자신들의 상업적인 에스테틱을 하이패션 런웨이로 매끄럽게 이식하는 건 꽤 드문 일이다. 하지만 앨리스 스텐뢰프(Alice Stenlöf)는 지금 패션계의 맥박이 어디서 뛰고 있는지 정확히 짚어냈다. 이들의 쇼는 단순히 다음 시즌 옷을 나열하는 전형적인 캣워크가 아니라, 브랜드 자체가 지향하는 비전을 공간 전체에 밀어 넣는 일종의 몰입형 체험에 가까웠다.
수석 디자이너 사베자 아우젤(Saveja Awzel)과 스텐뢰프의 팀은 동시대 여성상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영리하게 풀어냈다. 구조적인 코르셋에 여유로운 오버사이즈 실루엣을 툭 걸치고, 자칫 과하게 페미닌할 수 있는 피스들에는 그래픽적인 컷아웃 디테일을 더해 서늘한 엣지를 살렸다.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물들인 독특한 옴브레 데님도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당장 입고 싶을 만큼 웨어러블하면서도, 현재 스웨덴 패션 씬의 기류를 가장 기민하게 읽어낸 결과물이었다.
흥미로운 건, 스톡홀름이 제시한 이런 구조적이면서도 유연한 텍스처의 변주가 런웨이 밖 최전선에서도 고스란히 목격되고 있다는 점이다. 런웨이 트렌드가 어떻게 현실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치환되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마침 6월 15일 마드리드 레드카펫에 선 젠데이아를 보면 된다.
‘더 드라마’ 프레스 투어가 끝난 지 고작 두 달, 그녀가 새로운 마블 유니버스의 세 번째 챕터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를 위해 돌아왔다. 영화 개봉은 7월 31일이고 심지어 ‘디 오디세이’ 프로모션까지 겹쳐 있어 꽤 이른 시점부터 스텝 앤 리피트를 밟아야 했지만, 그녀의 룩에는 어떤 타협도 없었다. 이번 룩의 완벽한 플러스원은 다름 아닌 톰 홀랜드, 그리고 2026년 서머 시즌을 강타한 프린지 트렌드였다.
그녀의 전속 이미지 아키텍트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로우 로치(Law Roach)는 크리스천 코완(Christian Cowan)의 2026 가을 컬렉션에서 스트랩리스 리틀 블랙 드레스(LBD)를 핀셋으로 집어내듯 골라냈다. 미디 드레스의 스위트하트 네크라인부터 코르셋으로 조인 허리 라인(A-DSGN이 런웨이에서 보여준 바로 그 구조적인 터치처럼)을 지나 골반까지 비대칭으로 플로럴 레이스가 타고 내려오는 형태다.
압권은 새틴 사시가 거미줄 같은 스커트 자락으로 이어지는 지점이었다. 종아리를 스치는 길고 가느다란 프린지들이 자칫 클래식하기만 할 뻔했던 LBD에 극적인 텍스처를 부여했다. 마치 허리선에 묶인 리본의 비대칭적인 실루엣을 반투명하게 복사해 놓은 듯했는데, 젠데이아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파게티 스트랩처럼 얇은 가닥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거미줄처럼 찰랑거렸다.
과거 ‘파 프롬 홈’ 프레스 투어 당시, 미세한 거미줄 귀걸이로 시작해 결국 발렌티노 가운 전체를 거미줄로 덮어버렸던 그녀의 점진적인 메소드 드레싱이 다시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액세서리 매칭 역시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스테페레(Stefere)의 19,510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및 사파이어 귀걸이는 드레스의 프린지처럼 각기 다른 길이로 찰랑거리며 룩의 텐션을 이어갔다.
발끝은 그녀의 시그니처인 크리스찬 루부탱 소 케이트 펌프스로 마무리했고, 롤렉스 시계와 제시카 맥코맥(Jessica McCormack)의 웨딩 밴드를 무심하게 매치했다. 5캐럿짜리 이스트-웨스트 인게이지먼트 링은 아마도 다음 레드카펫 프리미어를 위해 아껴둔 듯하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텍스처와 실루엣을 치밀하게 통제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방식. 스톡홀름의 런웨이부터 할리우드 최고 스타의 레드카펫까지, 2026년의 패션은 결국 이 계산된 디테일의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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