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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수다]누가 집안일을 우습게 보나.."원더우먼도 힘들다"

'여자는 집안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해라'

결혼 이후 완벽히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운전이 미숙한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점과 별개로 집안일이 운전보다 하찮거나 쉬운 일이란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과 카페에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는데, 주말에 어렵사리 시간을 맞춰 남편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엄마들이 모여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같은 주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주된 대화는 가족과 남편, 집안일, 육아 등에 대해 이것저것 잡다한 얘기다. 가벼운 주제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가장 현실적인 얘기이자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엄마들은 이렇게 얼굴을 맞대거나 휴대폰 메신저를 통해 서로 궁금한 점이나 힘든 일들을 공유하며 조언을 주고받기도, 응원하기도 한다.

"집안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어. 아기를 보면서 틈틈이 집안일을 하는데 돌아서면 기저귀에다 아기 옷, 장난감들로 어질러지고."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는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이 퇴근해 집에서 푹 쉴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어질러져 있으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일까 속상하지. 종일 아기 밥 먹이랴 청소하고 빨래하느랴 쉴 틈이 없었는데 말야"라고 거들었다. 그 말에 우리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휩쓸고 간 자리. 매번 있는 일이긴 하지만 치울 생각을 할 때마다 눈 앞이 컴컴해진다.

아침 식사를 차리고 나면 곧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 다가온다. 점심 먹은 걸 치우고 다른 집안일을 조금 하고 나면 또 저녁 차릴 시간이다. 도대체 쉴 틈이 없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녹초가 돼 이불 속에 파묻힌다.

첫째 아이가 어릴 때 '어린이집에 보내면 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등원시키면 그때부터 정작 집안일이 시작됐다. 편히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집에 없는 이 시간뿐이다. 불룩 나온 배로 온 집안을 청소한 뒤 반찬을 만들어 놓고 은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면 금방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 됐다.

아이가 집에 오면 장난감들로 또 엉망진창이 될 게 뻔하지만, 지저분한 거실에서 놀다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에 더 열심히 청소했다. 하원 전 깨끗한 집안 사진을 한 장 찍어 남편의 휴대폰으로 전송한다. 전쟁터가 되기 전 마지막 모습을 기념하며..

"결혼을 해보니 엄마 마음을 알겠더라"

우연히 내뱉은 이 말에 모두가 가장 많이 공감했다. 결혼하기 전엔 집안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알지 못했다. 학교에 갈 때 옷장에서 꺼내 입은 옷, 냉장고만 열면 미리 만들어져 있던 반찬, 가스레인지 위에 데워져 있던 국.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모두가 엄마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친정엄마는 워킹맘이셨기 때문에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아빠와 나, 동생들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가장 큰 조력자는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가 된 나 역시 남편이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돼 가는 중이다. 무거운 짐을 한 손에 들고선 아이를 업고 다닐 정도로 처녀 시절 없던 힘이 생겼다. 4구 가스레인지로 동시에 여러가지 요리를 할 수 있고,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드라마에선 가부장적인 남성이 집안일을 아주 쉽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무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모든 전업맘(전업주부 엄마)을 두고 '어린이집 보내고 카페 가서 수다 떠는 여자들' '집에서 놀고먹는 여자들'이라 비하하는 기사 댓글들이 수두룩하다.

"그래도 식구들이 잘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 오늘 저녁 반찬은 뭐 할거야?"

집안일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다 가도 결국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로 마무리한다. 오후 1시가 훌쩍 넘어 만난 우리는 순식간에 수다를 떨고 함께 장을 본 뒤 오후 5시가 채 되기 전에 쿨하게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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