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속에 감춰진 방향제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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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속에 감춰진 방향제의 '두 얼굴'
  • 임성영 기자
  • 승인 2017.05.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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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씨는 신혼때 큰 마음을 먹고 수입 디퓨저를 샀다. 하지만 1년 후 출산을 앞두고 디퓨저를 치웠다. 사진=오진영씨 제공.

#2016년 5월. 얼마 있으면 결혼 1년차를 맞는 신혼부부 오진영(34)씨는 요즘 디퓨저에 푹 빠졌다. 안방과 서재, 화장실 등 각 방마다 다른 향의 디퓨저를 사용해 인테리어와 향기로 각 방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2017년 5월. 결혼 2년차를 맞은 오진영씨는 출산 예정일을 한달 앞둔 예비 맘이다. 출산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한 건 각 방마다 놓인 디퓨저를 치운 일이다. 방향제 속에 있는 각종 화학 성분들이 신생아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출산 관련 서적을 통해 알았기 때문. 지난 아홉 달 동안 진영씨의 기관지를 통해 들어간 디퓨저의 성분이 혹여 뱃속 아이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다.

지난 2010년 즈음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내 방향제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병에 향수와 같은 액체를 담아 나무 막대 등을 꽂아 실내에 향기를 퍼지게 하는 방식의 디퓨저부터 고체상태의 석고 방향제, 향초방향제까지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방향제로 유명한 해외 브랜드까지 국내 시장에 속속 발을 들여 놓으면서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향기로운 방향제 속에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는 여러가지 화학 성분들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방향제를 계속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방향체 판매 업체들은 ‘천연’ ‘오가닉’ ‘인체에 무해한’ 등의 문구를 더해 판매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역시도 믿을 만한 것인지 확실히 알 길이 없다.

지난해 2월 영국 왕립외과협회(RCP)와 왕립보건소아과학회(RCPCH)는 공동 연구를 통해 방향제 등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탈취제에는 액상·고체상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함유돼 있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기 중에 쉽게 기화(액체가 기체가 되는 현상)하는 리모넨(limonene)은 레몬과 유사한 냄새가 나 탈취제에 주로 사용하지만 사람이 들이마시면 체내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로 변해 안구·피부질환, 기침, 구역질을 일으키고 심하면 인후암을 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산부의 호흡기를 통해 태아에 전달되면 폐·간 발달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유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 존 밤스 박사 연구팀도 지난 2006년 실내에서 방향제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호흡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증가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파라디클로로벤젠’이라는 물질을 지목하며 공기와 접촉하면 휘발성 유기화학물을 만들어내며 사람이 자주 접할 경우 폐가 손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방향제에 들어있는 성분 중 인체에 유해한 물질은 어떤 것일까? 전문가들은 앞서 언급한 ‘포름알데히드’와 함께 ‘프탈레이트’ 등이 성분표에 기재돼 있다면 피하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대표적인 발암물질이다.

프탈레이트는 향을 녹이고 향이 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성질이 있어 방향제를 만드는 데는 유용하지만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면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미세한 입자 단위로 많은 양이 폐를 통해 인체에 유입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프탈레이트의 종류엔 DEHP, BBP, DBP, DEP 등이 있다. 특히 DBP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사용이 금지됐다. DBP 프탈레이트에 자주 노출되면 여성은 자궁 손상이 발생할 수 있고 남성은 호르몬 교란으로 정자 수 감소 등 생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 밖에 ‘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와 ‘2-메틸-4이소티아졸린-3-온’과 ‘클로록실레놀’, ‘구연산’, ‘나프탈렌’, ‘P-디클로로벤젠’ 등이 함유된 제품도 피하는 게 좋다.

지난 2015년 국립환경과학원은 국내 171개 업체가 판매하고 있는 방향제와 탈취제를 대상으로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처럼 흡입 시 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성 물질의 함유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세정제 31개 제품, 탈취제 24개 제품, 방향제 41개 제품에서 가습기 살균 사건에서 문제가 돼 정부가 유독물질로 정한 MIT 등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EU가 사용을 금지한 화학물질인 2-메틸-4이소티아졸린-3-온과 클로록실레놀, 나프탈렌, P-디클로로벤젠 등 네 가지 화학물질은 일부 국내 기업에서 제품 제조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제2의 가습기 사태를 막기 위해 지난해 말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확정했으며 오는 2019년 시행을 목표로 ‘살생물제 관리법(가칭)’을 도입해 가습기 살균제처럼 적은 양으로도 인체에 위해한 살생물제를 관리하기 위한 벌도 법령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물질은 안전성과 효능 자료를 우선 제출해 사전에 정부의 평가와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미 유통 중인 물질은 정부에 신고 후 최대 10년의 승인유예기간 안에 평가자료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이 시행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고, 법 적용의 사각지대인 민간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 등도 많아 소비자들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전문가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방향제를 쓰지 않는게 낫다고 조언한다. 그래도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성분표시를 반드시 확인해 유해 물질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를 살피고 사용량과 사용법을 지켜야 하며 하루에 두 번 이상 반드시 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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