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난임일기]'니탓내탓'해서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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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난임일기]'니탓내탓'해서 무엇하랴
  • 김지영 기자
  • 승인 2019.08.0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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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는 난임부부의 심리적 어려움 극복에 도움을 주기 위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5. 난임부부가 서로에게 해선 안 될 말과 행동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난임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남편에게 평범한 아빠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내와 그런 아내가 걱정돼 아이를 원하는 마음을 1도 내색하지 않는 남편.. 정말 다정한 부부였다.

당시 나는 난임병원을 방문하기 전이었는데도 애틋하고 간절한 그 부부의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났다.

그런데 막상 내가 난임시술의 당사자가 되고 보니 TV 다큐멘터리 속 모습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부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오글거리는 표현을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랑한다', '고맙다'는 직접적인 표현도 자주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정작 진심은 에둘러 표현하고 영양가 없는 말장난을 주고받으면서 우애(?)를 다지는 편인데 가끔 그 장난이 지나쳐 부부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한 번은 난임병원에 다니면서 남편에게 서운함이 폭발한 적이 있었는데 신선배아 1차, 동결배아 1차 총 두 번의 이식을 실패한 뒤 의사 선생님과 다음 시술을 상의하던 때였다.

"여보, 의사 선생님이 다음엔 시술 방법을 바꿔보려고 한대.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이번에 시도하려는 방법은 복수가 찰 위험이 더 크다고 하시네?"

나는 이전 시술 때 난자를 채취한 뒤 난소과자극증후군으로 복수가 차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다행히 복수를 주사로 뽑아내는 복수천자까지 할 정도로 악화되지 않았지만 멀쩡했던 배가 순식간에 부풀어 응급실에 가게 될까 봐 불안했던 경험은 아주 끔찍했다. 그런데 남편은 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복수 차는 건 괜찮아. (임신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뭐라고??? 복수 차는 게 괜찮다고? 당신이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그 답답한 느낌을 알아? 배가 부풀어 넉넉했던 바지가 안 잠길 때 그 당혹감을 알아? 이게 언제 나아질지 몰라서 두렵고 초조함에 며칠을 보냈던 그 마음을 알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빼애애애애액!!!"

나는 서운함을 참지 않았다. 난임시술에서 남자가 하는 일은 겨우 정자를 제공하는 일뿐이다. (겨우라고 표현해서 좀 그렇지만 객관적인 사실이 그렇다.) 진료를 보는 일부터 시작해 시간에 맞춰 주사를 맞고 약을 먹은 뒤 난자를 채취·이식하는 시술과정, 시술이 끝난 뒤 온갖 증상을 몸으로 느끼면서 커피 한 잔 마음 편히 마시지 못하는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까지 모두 여자의 몫이니까 말이다.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는 난임 여성에게 처방되는 약과 다양한 주사들. 걱정과 불안 탓에 난임 여성은 날로 예민해진다. 

나도 뭐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 난임부부가 가장 많이 싸우는 이유는 서로에게서 난임의 원인을 찾는 것. 우리는 원인 불명의 난임으로 판정받았지만 나는 종종 나이, 생활습관을 따져가면서 '나보다 남편 탓이 더 크지 않을까' 하며 의심을 키워냈다.

"나는 당신보다 훨씬 젊은 데다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덜 마시고 운동도 하잖아.(솔직히 나도 운동은 많이 하지 않는 게 사실^^;) 아이를 갖기 위해선 당신도 좀 노력해야 하지 않아?"

나는 호르몬 주사 때문인지 감정이 널뛰면서 한껏 예민해졌고, 만만한 남편(?)을 향한 잔소리가 점점 늘어갔다. 남편도 속으로는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인데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내색한 적은 없었다. (그랬다면 진작 때려치웠을 지도 모른다.ㅎㅎ)

자주 방문하는 난임 카페에 보면 '이식을 앞두고 남편과 싸웠어요' '남편과 이식 후에 싸웠는데 착상에 영향을 미치겠죠?' 하는 질문을 종종 볼 수 있다.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안한 마음에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이제 와 내 탓 네 탓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스트레스는 난임의 적이다. 서로에게 어떤 위로와 격려를 건네야 될지 모를 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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