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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둥이아빠다]아내의 생일날
언젠가 아내의 생일에 예쁜 목걸이를 선물해 줘야겠다. 출처=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中 캡처

콤콤이가 태어난 후 몇 개월간은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간 것 같다. 뒤집기도 못했던 아이들이 어느새 뒤집는 건 물론 되집기까지 하고 뒤이어 스스로 앉고 기어 다니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에 무감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간 나 역시 매우 지치긴 했지만 아내에 비할 바는 아니다. 6개월여간의 임신부 생활에 이은 2개월여의 입원 생활, 출산 후 곧바로 이어진 '육아 고행'까지 아내는 제대로 쉴 틈이 없었다. 심지어 굳이 겪어도 되지 않을 잔류태반 제거수술까지 경험했으니 출산 전후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다 싶을 정도다.

아이들이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빡빡한 육아 일상에 약간의 여유가 생길 즈음 아내의 생일이 찾아왔다. 연애를 오래 했으니 결혼 이후에는 너무 세세하게 챙기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하에 우리 부부는 몇 년간 각자의 생일날 별다른 이벤트나 선물 주고받기 없이 같이 밥 한 끼 하는 정도로 가볍게 보냈다. 케이크 한 개를 사면 대부분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 다 먹지 못해 버리게 된다는 이유로 생일 케이크도 안 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속내는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나야 어차피 실리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인지라 '생일이 뭔 대수냐'라는 생각이지만 아내는 따로 말은 안 했어도 내심 남편이 생일 이벤트를 해주길 바랐을 수도 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사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아내의 생일날이 되면 바쁘다는 핑계로 슬쩍 넘어간 적이 많다.(이건 많이 찔린다.)

무계획적인 생일 저녁식사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던 아내. 나 같아도 그랬을 듯싶다.^^;;

이번에는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을 낳고 맞는 첫 생일이니 만큼 뭔가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한꺼번에 둘이나 생기다 보니 당장 돈 들어갈 곳이 만만찮아 값비싼 선물은 못한다고 해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둘만의 오붓한 저녁식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아내의 생일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도 나도 모르게 투덜대는 일이 많아지고 그에 대한 아내의 냉정한 반응이 맞물려 작은 말다툼이 벌어졌다. 뭔가 뚜렷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음에도 각자 회사일과 육아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가 쌓인 탓인지 별것 아닌 일에도 서로의 신경을 긁는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아내의 기분은 저기압이 됐고 나 역시 미안함과 짜증이 겹쳐 준비하려던 아내의 생일파티 계획을 흐지부지 넘겨버렸다. 결국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예약은 못했다. 막상 아내의 생일 당일이 되고 보니 짜증보다 미안한 마음이 훨씬 앞섰다. 콤콤이를 낳은 후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 말라 수척해 보일 정도여서 안쓰러웠는데 1년에 한 번뿐인 생일마저 좋지 않은 기분으로 보내게 하는 것 같아 더 미안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아내의 생일 저녁식사 1차 메뉴.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은 괜찮았다.(아내의 눈치를 계속 봐야 했지만...)

다행히 본가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잠시 우리 집에 계신 터라 아이들을 재운 뒤 부모님께 뒷일을 맡기고 아내와 일단 집을 나왔다. 비록 멋진 레스토랑 예약은 못했지만 최근 집 근처에도 꽤 괜찮은 분위기의 식당과 술집이 많이 생겨 아내와 단둘이 오붓하게 식사를 할 정도는 된다. 얼핏 들은 적이 있는 미국풍 캐주얼 레스토랑 겸 술집에 들러 스테이크 세트와 생맥주를 시켰다.

처음엔 무계획적인 나의 생일 축하파티(?)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던 아내가 맥주를 한 모금씩 하면서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이게 바로 알코올의 힘인가. 적당히 배를 채우고 이어진 일본식 술집에서의 둘만의 2차.

조용한 이곳에서 제대로 된 생일파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내는 '신생아 티를 갓 벗은 두 아이의 엄마 아빠인데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라고 대답했다. 가벼운 화장에도 육아로 인한 초췌함을 숨길 수 없는 아내의 말이 더 '짠하게' 느껴졌다.

아내의 생일 저녁식사 2차는 일본식 술집. 그러고 보니 술이 빠지지 않는다. 변명하자면 기분이 별로일 땐 알코올이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우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상콤이와 달콤이의 엄마 아빠지'

1년 후 아내의 생일날은 어떤 모습일까? 난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젠 아이들 핑계를 대면서 그저 그렇게 슬쩍 넘어가려고 애쓰고 있을까? 그럼 안되지. 오늘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멋진 생일파티를 열어주겠다는 각서라도 써야겠다.

김기훈 기자  core8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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