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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언니 육아일기]반전의 어린이집 엄마 모임

'같은 반 되고 모임 한 번 한 적이 없죠. 그래서 시간 되는 분들에 한해서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

태평이가 어린이집에서 한 학년 올라간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아마 목련이 필 즈음이었다. 태평이네 반에는 대체로 둘 이상의 자녀가 있는 가정이 많아 첫째 스케줄을 따라가기 더 바빴고 아이가 하나인 엄마들도 대부분 직장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난 1년간 같은 반을 하면서도 공식적인 엄마들의 모임은 없었다.(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너무 좋았다)

물론 지나가다 만난 엄마들끼리 소규모 모임은 있었다. 나도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번 얼굴을 마주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과는 잠깐 차도 마시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첫 '공식적인 엄마 모임' 일정이 막상 나오니 떨린다고 해야 할까? 초조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결혼 전부터 방송을 통해 그리고 지인들을 통해 워낙 엄마들 모임에 대한 안 좋은 '썰'들을 많이 들었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필참은 아니었기에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까지 배려해 점심시간으로 약속시간을 잡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가지 않기엔 배려한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의 불참이 아이에게 혹 해가 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자식 일이라 더 떨린 마음으로 참석했던 첫 어린이집 엄마 모임. 커피가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안고 태평이를 낳고 5년 만에 처음으로 어린이집 공식 엄마 모임에 참석했다. 이미 어린이집 등하원을 하면서 얼굴을 익힌 엄마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엄마들도 있었다. 서로 간단한 소개를 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누가 누구랑 친하더라 누구는 어떻다더라. 그때 한 엄마가 운을 뗐다.

"A라고 새로 어린이집에 온 아이 있죠? 우리 아이는 A 때문에 자꾸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참.."

이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자신의 아이가 A와 있었던 사건 사고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엄마가 나를 향해 말했다.

"태평이도 A와 문제가 있지 않았어요? 선생님한테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한창 친구에게 상처를 받았던 시기의 태평이. 일요일이 되면 다음날 어린이집 갈 생각에 울적해 했다.

순간 참석한 엄마들의 눈빛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얘기했다.

"네, A가 전학 오기 난 뒤부터 몇 달간 고생을 좀 하긴 했어요. 그런데 이젠 괜찮아요.."

다행히 최근 들어 A와 트러블이 잦은 아이 엄마가 겪었던 일을 토로하면서 내게 쏠렸던 시선은 빠르게 다른 쪽을 향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A가 침을 뱉는 건 물론 5살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험악한 말을 많이 한다는 거였다.

분위기가 점차 고조될수록 내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태평이네 어린이집에서도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혀 쫓겨나는 아이'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어린이집까지 가서도 그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한다는 얘기도 떠올랐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삼만리까지 갔을 즈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A가 중학생 오빠 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도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하고. 일단 선생님이 잘 얘기해 보겠다고 하시니 기다려 보는 건 어떨까요?"

A의 행동에 대한 엄마들의 끝없는 얘기를 단번에 끊는 한 엄마의 용기 있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한 명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다른 용기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네요. 내 아이도 언젠가 A의 입장이 될 수 있고, A는 환경상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니..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우리가 A를 어떻게 하자고 만난 건 아니니까요!"

멋진 엄마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커지기 시작하면서 이내 분위기는 다시 훈훈해졌고 그렇게 아름답게 그날의 모임은 마무리가 됐다.

A의 행동은 그 뒤로도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자 A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온순한 아이로 탈바꿈한 건 아니지만 이전과 비교해 거친 행동과 말투가 많이 줄어들었다.

목련이 봉우리를 피우는 이맘때가 되면 당시가 떠오르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썰'로 편견을 가지고 봤던 다른 엄마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나 역시 그들처럼 현명한 엄마가 되길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 해 연말 A의 엄마를 우연히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만났다. A의 엄마는 학기 초 학부모 상담 시간에 A의 행동에 대해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두 오빠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집에서는 말과 행동을 특별히 조심했다고 한다. A의 엄마는 내게 아이가 학기 초 태평이에게 했던 행동을 사과하며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굴을 보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바쁘다보니 이제야 만나게 됐다며 말이다.

괜찮다는 인사와 함께 발길을 돌려 태평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때 용기 있는 엄마가 내가 아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멋진 엄마들이 내 아이 친구 엄마라는 것에 감사했다.

꽃샘추위가 물러나면서 어느새 목련이 봉우리를 피우고 있다. 늘 이맘때가 되면 당시가 떠오른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썰'로 편견을 가지고 봤던 다른 '엄마'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나 역시 그들처럼 현명한 엄마가 되길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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