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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초단의 하루]유부녀의 '일탈(?)' 홀로 떠난 일본 여행

"여보, 나 혼자 여행 가도 돼?"

일본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하는 친구가 놀러 오라며 연락을 해왔다. 결혼할 때 부케를 받아줬을 만큼 절친한 친구였다. 다니던 회사에서 상사와 후배 양쪽에 치이면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터라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알아챈 친구가 고마운 제안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유부녀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남편도 회사 일로 바빴을 때인데 그런 남편을 보면 내가 내조를 못 하고 있다는 미안함이 들었다. 나 역시 회사에 가면 일에 파묻혀 쳇바퀴처럼 살았기에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럴수록 혼자 떠나는 여행이 간절해졌다. 나만 유난인가? 내가 지치고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고민 끝에 남편에게 친구가 있는 일본으로 2박3일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남편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걸까. ㅎㅎ)

많은 유부녀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섣부른 지레짐작 때문이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은 어쩌면 나부터도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혼자 여행하겠다고 했더니 주변 사람들은 "너 혼자? 신랑은?"이라며 흠칫 놀랐다. 왜 내가 여행을 간다는데 다들 남편 걱정을 하는 걸까. 혼자 여행하는 나를 걱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결혼 후 '누군가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내게 늘어났음을 새삼 확인했다. "남편 밥도 안 차려주고 팔자 좋다"는 연배 지긋한 상사의 말에 겸연쩍게 웃었지만 사실 나도 확신은 들지 않았다. '여행을 간다고 뭐가 달라지나.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나?' 이쯤 되니 마치 여행을 가는 것 자체가 미션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여행 당일 새벽 5시. 배웅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공항 비행기 탑승 시간을 기다리면서 친구로 보이는 50대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났다. 학생(?) 혼자 여행 가냐고 말을 걸어오셨다. 아주머니들은 "여행은 역시 가족이랑 가는 것보다 친구랑 가는 게 좋다"면서 "가족끼리 가면 빨래가 산더미인데 그 빨래를 다 누가 해. 여행을 쉬러 가는건지 뒤치다꺼리하러 가는 건지"라며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내 여행을 응원해주시고 떠나셨다.

목적지인 일본 오사카에 도착하니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신이 났다. 낮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는 급한 일이 생겨 밤늦게 만나게 됐는데 짧게나마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다미방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는 형식의 일본 카페.

일본에 도착해 처음 먹었던 음식은 오사카의 명물 카레였다. 카레는 남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 좀처럼 밖에서 먹을 기회가 없었던 메뉴였다. 스치듯 떠오른 남편 생각은 금세 잊어버리고 맛과 분위기에 집중했다.

오사카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도톤보리의 번쩍이는 간판을 구경하고 길거리에서 다코야키를 사 먹는 등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해 자리에 앉아 틈틈이 일기를 썼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짤막한 여유가 생겼다. 지금 되돌아보니 2박3일 동안 다이어리 4장을 빽빽하게 채웠는데 남편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오로지 여행지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채운 끄적임이 가득하다.

난바, 신사이바시, 아메리카무라를 거쳐 혼여의 마지막 행선지는 우메다였다. 우메다 스카이빌딩에서 야경을 보고 싶었는데 이미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녔던 터라 발이 아프기 시작해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또 언제 오겠냐 싶어 꾹 참고 걸어갔다.

길을 헤맨 끝에 우메다 스카이빌딩을 찾았는데 위에서 야경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결혼하기 수년 전 남편과 같이 왔던 곳이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던 거였다. 풋풋했던 당시의 추억이 물밀 듯이 떠오르면서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생각했다. '부부는 각자의 시간을 통해 역설적으로 상대방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김은정 기자  ejkim@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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