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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초단의 하루]회 못 먹는 포항댁의 입맛 적응기

[편집자주]아직 아이가 없어 '새댁'과 '아줌마' 사이 그 어디쯤 위치해 있는 나. 기자는 올해 결혼 7년 차에 접어들었다. 까칠한 서울 여자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를 만나 환상의 티키타카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5년을 가득 채운 긴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해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힌 결혼 생활은 여전히 새로움의 연속이다. 아이 없는 부부의 일상과 출산 준비 과정을 담아 보려고 한다.

"회 좋아하세요?"

결혼 전 나는 회에 입도 안 댔다. 물컹물컹한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사준다고 해도 마다할 정도였다. 게다가 맛도 없으면서 비싸긴 또 왜 이리 비싼지. 가끔 집에서 회를 먹어도 회를 먹는 건 거의 엄마와 동생뿐. 아빠와 나는 얼큰한 매운탕파였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회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경북 포항 출신 신랑을 만나면서 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회란 무엇인가. 인류는 언제부터 회를 먹기 시작했는가. 물고기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결혼 전 시댁에 처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예비 시부모님의 면접 질문 중 하나는 '회를 잘 먹느냐'는 것이었다. '뭐든 잘 먹는다고 해야 아무래도 싹싹해 보이겠지', '앞으로 계속 뵐 텐데 그때마다 먹기 싫은 회를 꾸역꾸역 먹을 순 없어' 두 선택지가 뇌리를 스쳤다. 잠시 대답을 망설였지만 결국 쓸데없이 솔직한 자아가 승리했다.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예비 시부모님의 표정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그날 예비 시댁 식구들과의 첫 외식 메뉴로는 고기가 낙점됐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회인지 고기인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장된 상태였지만 말이다.

동해안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의 풍경. 왼쪽 위부터 소라, 문어, 과메기, 대게빵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첫 명절을 맞아 내려간 시댁. 시부모님이 아침부터 죽도시장에 장을 보러 가신다는 얘기를 듣고 따라나섰다. 포항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인데 가보니 과메기, 문어, 소라 등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나 포항이 항구 도시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대게빵'도 서울에선 보지 못했던 명물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비싼 회를 기계로 탈탈 돌려 막 썰어내는 광경이었다. 5만원어치를 사면 식구 9명이 한 끼 식사를 하고도 남을 정도로 양이 푸짐했다.

회를 잔뜩 사고 돌아가는 길에 무뚝뚝한 아버님이 "족발도 하나 사가지" 하고 어머님께 말씀하셨다.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나를 배려하신 것이었다. "괜찮아요. 안 사셔도 돼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주장대로 족발을 사 들고 집에 돌아갔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그것은 더 럽♡ 영문을 모르는 가족들은 장바구니를 풀면서 "족발도 샀어?"라며 의아해했다.

회가 종류별로 푸짐한 포항댁의 식탁

드디어 식사 시간. 시부모님은 내가 회를 먹는지 내심 신경 쓰시는 것 같았다. 살짝살짝 느껴지는 눈길에 회 한 점, 족발 한 점(회 한 점, 족발 두 점이었나..ㅋ)을 번갈아 가며 집어 먹었다. "새언니 얼굴 닳겠어~" 하는 아가씨의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지금은 회를 잘 먹느냐고 묻는다면? 있으면 제법 잘 먹는 편이다. (아직 초고추장 맛으로 먹는 초단이지만) 하지만 시장에서 뜬 회 맛에 길든 탓일까. 고급 일식집에서 한 점 한 점 곱게 썰어져 보는 것만으로도 '저 비싼 몸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한 회는 여전히 그 맛을 모르겠다.

나와 남편의 유전자가 조합된 미래의 우리 아이는 회를 좋아하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김은정 기자  ejkim@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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