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걸린 아이 보내도..'속수무책'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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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걸린 아이 보내도..'속수무책' 어린이집
  • 임성영 기자
  • 승인 2019.01.1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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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은 기사와는 관련 없음.

서울 은평구에 사는 오선영(36살) 씨는 얼마 전 아이를 등원시키러 어린이집에 갔다가 선생님과 한 아이의 할머니가 대화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할머니의 손자인 아이가 독감에 걸려 아직 열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등원을 한 것이다. 주 양육자인 할머니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했다.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독감은 워낙 전염성이 높은 병인만큼 다른 아이를 위해 그래선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 기관에서 한 번씩은 이런 상황을 겪는다. 전염성 질병에 걸린 아이들이 단체 생활에 참여하다 보니 바이러스가 이리저리 옮으면서 다수의 아이들이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기관이 전염병의 온상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아이가 전염성 질병에 걸린 걸 알고도 기관에 보내는 부모들의 태도는 늘 논란거리다. 이로 인해 학부모 간 혹은 원장과 학부모 간 다툼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부모들의 이 같은 행동을 비판하기에 앞서 기관에 전염성 질병에 걸린 아이의 등원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아이가 아플 때 육아 공백이 생기는 부모들을 위한 현실적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유아보육법·유아교육법 내 '엄격하고 구체적 제재 필요'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 2017년 전국 808곳의 어린이집과 409곳의 유치원 원장을 대상으로 전염성 질병 발생 시 어려움 정도를 조사한 결과 △별도의 돌봄 인력 부족 89.2% △격리기준 명확성 부족 70.3% △부모의 이해 부족 63.6%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 노원구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A 원장은 "전염성이 있는 질병에 걸린 원아는 '이제 전염성이 없다'는 의사의 확인증을 받아와야 등원할 수 있다든지 등의 정확하고 자세한 지침이 필요하다"며 "확인증을 내라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아 부모들이 막무가내로 아이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영유아보육법 제32조 2항에 의하면 어린이집의 원장은 영유아의 건강검진 결과 혹은 의사의 진단 결과 감염병에 감염 또는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거나 감염될 우려가 있으면 영유아를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어린이집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유아교육법 시행규칙 제2조의 5항에 따르면 유치원 원장은 건강검진 결과 치료·격리 또는 휴학 등의 조치가 필요한 유아에 대해 보호자와 협의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영유아보육법과 유아교육법 모두 '감염병에 걸린 아이들에 대해 원장이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질병의 정확한 기준과 해당 질병에 걸린 아이가 기관에 등원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지침은 제시돼 있지 않다. 

반면 해외에서는 증상별 징후나 격리 기준에 대해 보다 엄격하고 구체적인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헌행법상 열이 있거나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영유아는 수업에 참여하거나 센터에 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Child Care Centers Regulations 11조 1및 1A항)고 명백히 제시하고 있다. 

호주 역시 가정에서 설사나 구토를 한 경우 마지막 증상이 발생한 뒤 24시간 동안 등교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치사율이 높지 않은 전염병을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하고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는 관련 없음.

◇'아이 아프다고 회사에 말 못하죠"..일과 가정 양립위한 정책 뒷받침 필요 

법적 제재에 앞서 아이가 아파도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부모들을 도와줄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육아 공백을 막아줄 어떤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법적 제재만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전업맘 유지은(35세) 씨는 "아이가 아파서 쉰다고 하면 흔쾌히 휴가를 허락하는 회사가 없다는 걸 나 역시 경험해 봐서 알기 때문에 피치 못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며 "어느 부모가 아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싶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정 내 격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호자가 아이를 돌볼 수 없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아이돌봄서비스 내 '질병감염아동 특별지원'이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아이돌보미 서비스 이용자가 많다보니 아이가 아파 전날 혹은 당일 신청해서 이용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전찬수(34세) 씨는 "아내와 둘 다 갑자기 회사에 휴가를 낼 수 없어 아이돌보미센터에 연락했는데 신청한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도우미와 매칭되지 않았다"며 "실제로 받을 수도 없는 서비스를 왜 홍보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질병 감염을 이유로 긴급 아이돌보미 지원 서비스를 받은 가정은 5300여 가구에 불과하다. 신청 가정 수는 많았지만 도우미 수가 적어 실제 혜택을 받는 가정이 많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각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전염성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따로 돌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담당 선생님까지 두면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전염성 질병에 걸렸다가 회복 중인 아이가 가정에서 관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면 임시로 아이가 거주하고 있는 시내 의료시설에 있는 돌봄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만약 부모가 질병이나 출산, 요양, 사고, 출장, 행사 등으로 인해 아이를 돌보지 못하면 단기 아동보육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보육 공백을 해소하도록 하고 있다.

최은영 연구위원은 "전염성 질병에 대한 격리는 질병 확산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일정 규모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격리 공간 설치를 의무화하고 관련 인력을 배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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