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노트]"드라마와는 다르다"..초보아빠가 본 눈물의 출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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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노트]"드라마와는 다르다"..초보아빠가 본 눈물의 출산기
  • 독자 벼락아빠 님
  • 승인 2018.01.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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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사연은 경기도 안양에서 9살 난 딸을 키우는 아이디(ID) 벼락아빠 님이 보내준 사연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배웠던(?) 출산 모습은 양수가 터지거나, 산모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분만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가 진통에 몸부림치면서 남편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흔히 봤다.

출산 경험이 없는 초보 아빠들이라면 대부분 위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나 또한 아내가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초보 아빠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아내의 진통과 분만 고통. 남편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소리를 지를 힘이나 정신이 없을 정도로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걸 이겨내는 것을 보고 엄마란 존재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우리 부부는 예정일 직전까지 가진통을 진통으로 오해해 새벽에 병원을 자주 갔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출산을 언제 할지 모르기 때문에 군대 5분대기조처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정일 하루 전인 이날도 저녁에 가진통이 시작되길래 혹시 새벽에 병원을 가야할 지 몰라서 먼저 일찍 잠을 청했다.

오랜 진통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온 벼락이.

한참 자고 있는데 아내가 급히 깨우며 "9시부터 계속 배가 아파. 이번엔 진짜 진통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산부인과에 전화하니 일단 병원으로 오라고 한다. 차를 몰고 가면서 이번에는 뭔가 진짜인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정쯤 병원에 도착해 진찰해보니 진통 간격이 조금 길어지고 자궁은 아직 1cm밖에 안 열렸다. '오늘도 아닌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예정일인 만큼 혹시 모르니 분만실에 있어 보자고 했다. 집에서와는 달리 아내가 분만실 침대에 너무 편하게 누워있길래 '이렇게 편하게 있다가 낳는 것인가?'라고 오해했다. (진통과 출산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기 전이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듯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통 강도가 세졌다. 아내가 병실에 누워 진통하는 사이 날까지 밝았다. TV에서 본 것처럼 금방 낳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통을 오래 했다. 진통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지켜보느라 나 역시 한숨도 못 잤다. 진통이 길어지는 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담당 의사가 와서는 젊으니깐 임신촉진제보단 자연진통으로 해보자고 말한 뒤 사라졌다. 이 말을 듣고 아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했다.

오후 1시, 아내는 13시간째 진통 중이다. 자궁이 4cm 열려야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2cm 밖에 안 열렸다고 한다. 아내는 허리가 아프다고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뱃속의 아이를 원망했고 이 상황에 분노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내는 오후 3시를 넘겨서야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2시간밖에 지속성이 없어 그사이에 출산해야 안 아프다고 했다. 주사를 맞은 아내는 고통이 사라진 듯 잠시 잠을 청했다. 나는 진통측정기 그래프를 계속 보면서 기다렸다.(평소에 배고픔을 잘 참지 못하는 나지만 이날은 아내와 고통을 함께 한다는 생각에 이 시간까지 배고픈지도 모르고 있었다)

벼락이가 태어나고 찍은 첫 가족 사진이다.

오후 5시30분, 아내는 17시간30분째 진통 중이다. 무통주사 지속시간이 2시간이라는데 정말 칼같이 약효가 끝났는지 아내가 아프다고 소리쳤다. 그로부터 2시간을 더 진통을 했다. 오후 7시30분, 가족분만실로 자리를 옮겨 내진하면서 힘주기를 한다고 한다. 몇 번의 내진과 힘주기를 반복하다 갑자기 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간호사들이 분주히 뭔가 준비하기 시작했고 곧 의사가 왔다.

내가 아내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출산교실에서 배운 라마즈 호흡법이 전부였는데, 막상 출산이 임박해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간호사는 나에게 아내의 머리를 받쳐주고, 이를 꽉 물지 않도록 옆에서 계속 얘기해주라고 했다. 뭔가 정신 없는 상태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 같은 두근거림이 지속됐고 나는 계속해서 아내에게 '이 물면 안 돼'. '호흡해, 후후하, 후후하', '얼굴로 힘주면 안 된대'라는 말로 응원(?) 해줬다.

오후 7시45분, 아이가 나와서 울기 시작한다.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의사가 아기의 탯줄을 자르라고 한다. 한 번에 잘리지 않을 정도로 질긴 느낌이었다. 이후의 일들은 바람과 같이 지나갔다.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 입천장 등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한 뒤 아이, 아내와 함께 첫 가족 기념사진을 찍었다. 수고했다는 몇 마디를 아내와 나누다 서로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출산 과정에서 나는 아내를 19시간45분 동안 고통스럽게 한 아기한테, 그리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한 내게 분노했다. (물론 아기를 안자마자 너무 예뻐 이 같은 생각은 눈 녹듯 사라졌다.) 9년이 지난 지금은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지만,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내에게 항상 고맙고 잘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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