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노트]매일 죄인이 되는 워킹대디
상태바
[독자노트]매일 죄인이 되는 워킹대디
  • 독자 사자머리 님
  • 승인 2018.01.10 12:4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번 사연은 서울 마포구에서 5살 난 딸을 키우는 아이디(ID) 사자머리 님이 보내준 사연입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하지만 둘만 있을 땐 언제 무슨 이유로 삐칠지 몰라 불안하기도 하다.(사진=독자 사자머리 님 제공)

나는 매일 아침 딸내미에게, 회사 직원들에게, 아내에게 죄인이 되는 '워킹대디'다. 

와이프의 일 년간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결혼 초 계획과 달리 우리 부부는 아내의 복직과 육아 모두를 택했다. 평소 남의 아이도 예뻐할 정도로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내는 휴직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육아에 전념하겠다며 복직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 한끼 점심 만이라도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며 사람답게 먹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육아휴직 동안 아내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늘었다) 

아내가 집에서 살림하며 아이를 보는 결혼생활을 꿈꿔왔던 나였지만 내 욕심보다는 아내의 생각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나와 아내는 학창시절 똑같이 공부했고 어렵게 취업했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를 가졌다. 그런 아내에게 "이제부터는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가라"고 강요하기엔 내 얼굴은 그리 두껍지 않았다. 그리고 딸 아빠이기 때문일까? 아내의 얼굴에 케첩이가 겹쳐 떠오르며 훗날 딸내미가 자기가 지금껏 살아온 모든 것을 접고 집에서 살림만 해야 한다고 하면 속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아이가 일하기를 원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맞벌이 삶이 시작됐다. 아내의 직장은 출·퇴근이 보통 직장인보다 빠르다. 새벽 5시50분에 일어나 6시20분에 집을 나선다. 아내의 출근과 동시에 나의 일상도 시작된다. 셔츠를 다린 후 밥을 하고 아이가 입을 옷을 골라 놓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딸내미방 문을 열어 아이를 깨우기 시작한다. 눈을 뜨자마자 딸내미는 엄마를 찾는다. 나와 함께 아침을 시작한 게 벌써 4년째인데 왜 아이는 엄마만 찾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없는 걸 확인한 케첩이. 아빠는 본체만체 힘 없이 토끼 인형을 데려다 토닥이며 "엄마 회사 갔다 올게. 코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데리러 올 거야"라고 말한다.(사진=독자 사자머리 님 제공)

"엄마는?? 엄마는?? 엄마~ 보고 싶어~ 엉엉ㅜㅜㅜㅜ"
(나는 곧 죄인이 되고 비굴모드로 들어간다. 무엇이 미안한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미안하다고 한다. 그나마 어른 여자처럼 "뭐가 미안한데?" 라고 묻지 않는 게 고맙다)

"미안. 미안. 아빠가 맛있는 돈까스 해놨어. 얼른 먹자~ 응?" 

생각해 보면 한 살 때가 좋았다. 그땐 잠든 케첩이를 안고 깨워도, 내 얼굴을 보며 꺄르르 웃어줬다. 아기 의자에 앉히고 밥을 한 숟가락씩 떠 먹이면 불평하지 않고 냠냠 잘 먹었다. 기저귀를 채우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혀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케첩이가. 이제는 '소녀 감성'이 충만한 5살이 됐다. 일단 아빠가 꺼내놓은 옷은 안 입겠다며 휙~ 집어던진다. 금도끼 은도끼 산신령 마냥 "이 옷 입을래? 저 옷 입을래? 아니면 모두 입을까?"하며 한참 씨름하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옷을 골라 방을 나간다. 그때의 그 당황스러움이란..!

아침을 먹으면서 2라운드가 시작된다. 케첩이는 세월아 네월아 노래도 부르면서 어린이집에 챙겨갈 장난감도 챙기면서 천~천히 밥을 먹는다. 

흐르는 시계를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두 명의 내가 생겨난다. 아이에게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는 나와 천천히 먹도록 두는 나. 결론적으로 늘 시계를 보면서 흐르는 시간을 탓할 뿐 아이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케첩이 어린이집 점심시간은 12시 반. 아침과 점심 간격이 길어 혹시라도 배고파서 헐레벌떡 먹다가 체할까 걱정, 부끄러움을 많이 타 더 먹고 싶어도 꾹 참는 건 아닐지 걱정, 나중에 커서 '아빠가 아침 안 줘서 머리 나빠졌잖아! 친구들보다 키 안 컸잖아! 책임져!!' 이러면 어쩌나 걱정, 이런 걱정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면 '지각쟁이 직장인'이란 타이틀은 머릿속에서 쪼그라들고 만다.

케첩이 등원길. 아빠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이집 놀이터에 있는 장난감을 타고 싶다는 케첩이. (사진=독자 사자머리 님 제공)

마지막 3라운드가 남아 있다. 외모 단장. 식사가 끝나면 치카치카도 해야 하고(케첩이는 양치질을 하면서 꼭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이제는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초 스피드로 부를 수 있다) 세수를 한 뒤엔 얼굴 로션도 꼼꼼히 발라줘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는 겨울왕국 엘사처럼 긴 머리를(아무리 자르자고 해도 안된다. 머리 자르자는 아빠를 얼음 나라로 보낼 것 같은 표정이다) 고무줄로 두세 번 묶어준다. 어린이집 앞에서 같은 시간 아이를 등원시키는 엄마들과 반갑게 웃으며 인사도 나눠야 한다.

이렇게 아이를 등원시키고 회사로 질주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아무리 서둘러도 출근시간은 꼭 제시간에서 1분이나 2분을 넘기니 말이다. 그나마 팀장님도 나와 같은 맞벌이 직장인이라 지각했다고 혼을 내진 않지만(맞벌이를 유지할 수 있는 데 상사의 영향이 정말 크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른 직원들이 모두 앉아 있는 사무실에 고양이 마냥 발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금살금 들어간다. 이렇게 난 팀장님을 비롯한 동료 직원들에게 죄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그날 아침 케첩이 모습을 보지 못한 아내에게 사진을 보내며 또 한번 죄인이 된다. '나보다 더 훌륭한(=돈 많은) 남자를 만났으면 이런저런 고민 없이 이쁜 아이와 즐기며 살았겠지..' 라는 미안함에 말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힘내요! 2018-01-23 18:44:28
그래도 넘 친절하고 멋진아빠네요

나도워킹대디 2018-01-11 19:24:10
공감합니다.우리도 양지로 나옵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