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언니 육아일기]10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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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언니 육아일기]10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 임성영 기자
  • 승인 2020.01.07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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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회사를 그만 두면 '내가 꾸욱 꾸욱 밟아 온 이 발자국들이 행여 없어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혹시나 회사를 그만두면 '내가 꾹 꾹 눌러 밟아 온 이 발자국들이 행여 없어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지난 10년간의 내 삶이, 아니 내가, 송두리째 없어지는 건 아닐까?"

사직서를 내던 날 국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4년 동안 매일같이 나는 이 질문과 싸워야 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기적같이 합격한 첫 회사. 인턴으로 시작해 정직원이 되기까지 1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밥도 안 먹고 일만 했다.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적은 월급도 신체적인 피곤함도 선배들의 나무람도 모두 다 참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1년간의 테스트(?) 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됐고, '이 어려운 시기에 너를 취직시켜 준 회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녀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정말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어 생각지 못했던 부서로 발령이 났고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며 신나게 출근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나는 원래 집안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인생의 최종 목표였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엄마의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1년간의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면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소위 '사회의 물'을 먹은 나는 하루에 한 번 커피를 마시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기 혹은 부서원, 취재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고, 내 계좌의 찍힌 월급을 보고 다음 한 달을 일할 힘을 충전하는 삶에 완전히 젖어 있었다. 

그러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아이에게 하루 24시간 중 23시간 40분 가량을 쏟아 부어야 하는 삶은 정말이지 적응하기 어려웠다. (출산과 육아휴직 기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난 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리라..)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갈수록 다시 '복귀'하겠다는 마음이 굳어졌고 그렇게 나는 내가 세웠던 인생의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노선을 확 틀었다. 

겨울이면 깜깜해져 집에 돌아왔던 태평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낮이 짧은 겨울은 내게 '추운 계절'이기보다 '마음이 더 아픈 계절'이 됐다.
겨울이면 깜깜해져 집에 돌아왔던 태평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낮이 짧은 겨울은 내게 '추운 계절'이기보다 '마음이 더 아픈 계절'이 됐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엄마의 삶. 그 또한 녹록지 않았다. 시댁과 친정 모두 아이를 봐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도우미를 쓰는 것도 성격상 맞지 않아 결국 남편과 내가 번갈아 등·하원을 시키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하원 담당이었던 나의 퇴근길은 항상 눈물 바다였다. 아마 조금이라도 일찍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다는 기쁜 마음과 조금 늦었다는 미안함으로 흘린 눈물이 30대 70 정도였던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해가 뜨기 전 출근길에 올라 일을 하고 퇴근하며 아이를 픽업하고 집으로 출근하는 삶. 일주일에 두어 번은 가느라 집처럼 친근했던 병원.  그때도 매일같이 사표를 마음속에 품고는 다녔지만 그래도 견딜만했다. 태평이가 어린이집에 너무 오래 남아있지 않도록 신경써준 부서원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한 번의 부서 이동으로 지난 3년간 겨우 맞춰온 모든 것을 다시 세팅해야 하면서부터 사표는 더 이상 마음속의 사표가 아니었다. 나의 출근 시간은 더 빨라지고 퇴근 시간은 더 늦어졌다. 당직이 더 잦아지고 저녁 자리도 늘어났다. 한참 육아에 신경 써야 했던 나의 삶을 이해해 주는 부서원들이 새로운 부서에는 없기도 했다. 태평이는 어린이집에 더 오래 있어야 했고, 자연스레 남편에게 주어진 육아의 짐은 더 무거워졌다.

마지막 출근을 기념하며 한 컷. 가끔 동트기 전의 가장 어두운 그 하늘이, 새벽 공기가 그리울 때도 있다.
마지막 출근을 기념하며 한 컷. 가끔 동트기 전의 가장 어두운 그 하늘이, 새벽 공기가 그리울 때도 있다.

그렇게 1년, 우리 가족은 점점 미소를 잃어가고 있었다. 보는 시간이 줄어드니 함께 웃을 시간이 줄어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상에 없었던 저녁 회의를 하던 날, 회사로 향하던 길에 태평이를 픽업하고 남편은 회사에서 조금 일찍 나와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태평이에게 이따 보자는 인사를 하는 순간 태평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면서 왜 계속 회사에 가?"

차마 답을 하지 못하고 고사리 손을 떼어 내며 "이따 보자" 말하곤 차 문을 닫았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하던 길, 마음을 먹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왔던 '사회인의 삶'이었는데 그날은 정말 더 이상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사직 의사를 부원들에게 전한 뒤 사직 처리의 마지막 단계인 국장과의 면담 날, 문고리를 잡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나는 그 문을 열었다.  

"이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사회인으로서 퇴보하는 게 아니야. '엄마로서의 삶'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거야!"   

이제는 마실 수 없다는 '아쉬움'과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시원함'이 뒤엉켜 무슨 맛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생애 첫 회사를 퇴직하며 마신 커피 한 잔 
이제는 마실 수 없다는 '아쉬움'과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시원함'이 뒤엉켜 무슨 맛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생애 첫 회사를 퇴직하며 마신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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