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점식 안전벨트도 가능'..알맹이 빠진 법, 아이들 생명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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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식 안전벨트도 가능'..알맹이 빠진 법, 아이들 생명 위협
  • 임성영 기자
  • 승인 2020.01.02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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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사는 한윤미(36세) 씨는 최근 내년이면 7살이 되는 첫째 아이 학원을 알아보다 포기했습니다. 6살 가을학기부터 유치원이 끝나면 학원으로 가는 친구들이 많아지자 아이가 학원에 다니길 원했습니다. 7살이 되면 더 많은 친구들이 학원에 갈 거라는 지인들의 얘기에 한 씨는 동네 학원 이곳저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요. 아이가 매일 타고 다닐 '차량의 안전성'에 가장 중점을 두고 살폈는데, 안전벨트가 제대로 된 차량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모두 2점식 벨트인 건 물론 낡아서 길이 조절이 안되거나 버클이 고장 난 차량도 수두룩했습니다.  

모든 차량이 그렇지만 특히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은 사고가 났을 때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줄 만반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 통학차량이 '생명띠'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안전벨트조차 아이들에게 맞게 갖춰져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2점식 성인용 수동 안전벨트가 장착돼 있는 서울시 내 한 학원에서 운행 중인 승합차 내부.
2점식 성인용 수동 안전벨트가 장착돼 있는 서울시 내 한 학원에서 운행 중인 승합차 내부 모습입니다.

◇도로교통법 빈틈..'어린이용 전용 벨트·카시트' 명확한 보호장구 명시 안해 

우선 관련 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 제53조(어린이통학버스 운전자 및 운영자 등 의무)에 따르면 '②어린이 통학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은 어린이나 영유아가 통학버스를 탈 때 모든 어린이나 영유아가 좌석 안전띠(어린이나 영유아의 신체구조에 따라 적합하게 조절될 수 있는 안전띠를 말한다)를 매도록 한 후 출발해야 한다'고 나와있습니다.

여기서 '좌석 안전띠(안전벨트)'라는 단어가 문제가 됩니다. 대개 부모라면 '어린이 신체구조에 따라 적합하게 조절될 수 있는 안전띠'라고 했을 때 카시트나 어린이 전용 안전벨트 등을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어린이 전용 안전벨트'나 '카시트', '부스터' 등 정확한 보호장구 명이 기재돼 있지 않아 길이 조절이 가능한 성인용 안전벨트만 장착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법에 길이 조절이 가능한 좌석 안전벨트라고 명시했기 때문에 성인용 안전벨트도 상관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조항 덕분(?)에 영유아가 타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통학 차량도 카시트 의무 장착 대상에서 예외로 빠졌습니다. (☞관련기사 택시도 '전 좌석 안전띠 의무화'..아기 카시트 들고 태워라?)

해외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선 통학차량에 길이 조절이 가능한 3점식 안전벨트(위) 혹은 4점식 안전벨트(아래)를 장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내 승합차·버스, 성인용 2점식 벨트 기본 장착..사고 시 2차 상해 심각

국내에서 통학버스로 사용하는 승합차나 버스 등은 생산 시 손으로 직접 길이를 조절하는 성인용 2점식 벨트가 기본으로 장착됩니다. 성인용 2점식 안전벨트는 아이들이 길이 조절을 하기 힘들어 헐거운 상태로 착용할 뿐만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 머리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고 안전벨트가 위로 올라와 배를 압박해 장이 파열될 수 있습니다. 승용차에 3점식 벨트를 적용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3점식 혹은 4점식 안전벨트로 바꾸거나 어린이 전용 시트, 카시트 등을 장착하기 위해선 개별적으로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특히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 거의 모든 카시트는 3점식 안전벨트에 맞춰 만들어져 있어 카시트를 장착하려면 좌석을 개조해야 합니다. 

이렇다 보니 학원 운영자 입장에서 굳이 비용을 들여 어린이 전용 안전벨트나 카시트 등을 장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학원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요구도 없었다"며 "아이들 연령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카시트를 장착하는 건 더 비현실적이라 2점식 안전벨트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물론 3점식 벨트도 완벽한 건 아닙니다. 사고 시 아이의 목을 조를 수 있어 아이의 앉은 키를 높여주는 부스터를 이용하거나 벨트가 목을 압박하지 않도록 길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버클을 채워야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만 충족되면 3점식 벨트의 안전성은 2점식 벨트보다 월등히 높아집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났을 때 2차 상해를 막기 위해 아이들의 키에 맞춰 길이 조절이 가능한 3점식 안전벨트를 부스터와 같이 이용하거나 카시트 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2점식 벨트가 3점식 벨트보다 안전한 건 여러 연구 조사를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라면서 "아이들이 타는 통학버스는 3점식 벨트를 기본 장착하고 사고 시 벨트가 아이의 목을 조르지 않도록 부스터 등을 함께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들 보호장구 역시 확실히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면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선 현행법을 바꾸기 위한 정부부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독일의 개인택시는 유아가 탔을 때 차량 시트 높이를 올릴 수 있도록
독일의 개인택시는 카시트를 따로 설치를 하지 않아도 좌석 시트의 높낮이를 아이 몸에 맞출 수 있게 조절 가능하도록 만들어 편하게 안전띠를 할 수 있습니다.

◇'알맹이 없는 법' 피해는 아이들에게..'3점식 이상 안전벨트 의무화 법' 계류 중

정부는 지난 2014년 말 통학버스로 인한 어린이 안전사고를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법(세림이 법) 개정에 나섰습니다. 개정된 법(앞서 살펴본 도로교통법 53조 포함) 내용은 △통학버스 신고 후 운행 △신고 시 안전조건 통과 차량 한해 운행 △통학버스 등·하차 도우미 동반 탑승 △탑승 어린이 안전벨트 착용 확인 △운전자 안전관련 교육 이수 등인데요.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알맹이가 빠진 느낌입니다.

만약 통학버스 승인을 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안전조건에 '어린이 전용 안전벨트(길이 조절용 3점식 혹은 4점식)나 카시트, 머리를 보호할 쿠션 등 어린이 전용 보호장구를 반드시 장착할 것'을 추가했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법이 되지 않았을까요.

지난 9월 이용호 국회의원이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조건에 '3점식 이상 좌식 안전벨트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더 이상 알맹이 없는 법 때문에 아이들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어선 안됩니다. 어린이 교통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해당 법 통과는 더 요원해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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