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언니 육아일기]고작 5살이 안경을? 사흘 밤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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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언니 육아일기]고작 5살이 안경을? 사흘 밤을 울었다
  • 임성영 기자
  • 승인 2019.12.24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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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검사를 받고 있는 태평이

"태평이는 안경을 써야 하겠어요. 난시 원시 근시가 복합적으로 있어요. 무엇보다 약시라서 교정이 꼭 필요합니다" 

어느 여름날, 그저 보통 때처럼 안과 정기검진을 하러 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꿈인가?' 했다. 남편의 시력은 지금도 1.5, 내 시력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을 유지했고 지금도 조금 나빠졌지만 안경을 쓰지는 않는다. 둘 다 시력이 좋았기에 아이가 안경을 쓰는 건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옵션이었다. 게다가 태평이는 영상도 거의 보지 않는 아이였다. 

남편과 나는 병원을 나와서도 의사의 말을 의심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아마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아이가 한 번도 잘 안 보인다거나 흐리게 보인다고 한 적이 없어요. 선생님 그런데도 안경을 써야 하나요?"

실제로 그랬다. 태평이는 한 번도 눈을 가늘게 뜬다거나 뭐가 잘 안 보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님 당연하죠. 아이는 단 한 번도 세상을 밝게, 뚜렷하게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처음부터 뿌옇게 봤으니 세상이 그렇게 생긴 줄 아는 거예요"

세상에.. 선생님은 의학적으로 사실을 얘기했지만, 내가 육아를 하면서 들을 말 중 가장 날카로운 비수였다. 

태평이의 첫 안경. 이왕이면 무채색을 골랐으면 했는데 보라색이라니!
태평이의 첫 안경. 이왕이면 무채색을 골랐으면 했는데 보라색이라니!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침대에 웅크려 펑펑 울었다. 남편의 어떤 위로도 들리지 않았다. '왜 하필 그런 DNA를 물려줬을까, 친구들이 놀리면 어쩌지, 얼굴형이 변한다는데, 여름에 흘러내릴 텐데, 겨울엔 김이 서릴 텐데..' 오만 걱정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런 상태는 사흘이 넘도록 지속됐다. 아이 얼굴만 보고 있어도 눈물이 차올라 얼굴을 오래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나 주변 사람들이 속상해하면 아이가 안경 쓰는 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는데 그게 더 힘들었다) 

눈물은 금세 말랐지만 '근시와 난시'를 물려준 엄마라는 죄책감은 그 이후로도 꽤 오래 지속됐다. 어디선가 '안경' 얘기만 나와도 위축되곤 했다. 

물러터진 엄마와 달리 태평이는 잘 적응했다. 주변 엄마 아빠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 남편은 태평이가 안경이 쓰고 가기 전날 어린이집 학부모 단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태평이가 안경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간곡히 부탁했다. 혹시라도 태평이가 안경을 쓴 모습을 보면, 평소와 달리 안경에 대한 언급 없이 인사해 주십사 아니면 '예쁘다, 멋지다'는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 주십사 말이다. 어른들의 '아직 어린데 어쩌니..'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고 그러면 시력 교정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도 함께 말이다.

다행히 친구들은 안경을 쓴 태평이나 쓰지 않은 태평이나 똑같은 태평이로 대했다. (오히려 어려서 안경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학부모는 물론 조부모님들은 안경 쓴 태평이에게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주변의 따뜻한 마음이 쌓여 태평이의 마음엔 용기가 자랐고, 그 용기에 이전보다 태평이는 더욱 씩씩해졌다. 

안과 병원에 걸려 있는 그림. 이 그림을 보고도 혼자 한참을 울었다
안과 병원에 걸려 있는 그림. 이 그림을 보고도 혼자 한참을 울었다

태평이가 안경을 진단받은 것도 벌써 2년 6개월 전. 글에 담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안경을 쓰는 태평이도 나도 적응이 돼서 오히려 안경을 벗는 게 어색하지만, 간혹 길에서 만난 어르신이 "아이고 안경을 써서 어떻게 해.."하는 관심을 보일 때 나는 여전히 완전 쿨하게 웃어 넘기지 못한다. 

물론 태평이는 다르다. 오히려 "안경 쓰면 얼마나 잘 보인다고요. 훨씬 좋아요!"라고 답할 정도다. 

아마 아이가 이제 막 숫자를 알기 시작하면서 시력 검사를 받고 '안경 진단'을 받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어린 시절에 안경을 쓰는 친구 중에선 '평생 안경을 써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 친구들이 대부분일 거다. 태평이도 그랬다.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그리고 1년 6개월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열심히 안경을 썼고 그 결과 지난번 정기검진 때 '시력이 많이 좋아져서 이대로만 가면 초등학교 때 안경을 안 쓸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물론 조건이 있긴 하지만 엄마에겐 실낱같은 희망도 희망이다. (나는 여전히 태평이의 안경을 받아들이지 못했나보다ㅎㅎ) 그러니 시력검사는 가능한 한 빨리, 진단을 받았다면 안경도 가능한 한 빨리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혹시 주변에 안경을 쓰는 친구가 생긴다면, 안타까운 마음은 잠시 접고 "예쁘다! 멋지다!"는 말로 아이에게 용기의 씨앗을 뿌려주는 어른이 돼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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