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언니 육아일기]헉, 나도 육아꼰대? '지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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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언니 육아일기]헉, 나도 육아꼰대? '지저스!'
  • 임성영 기자
  • 승인 2019.12.10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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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9월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캐나다로 떠났던 친구가 한국에 왔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구가 무려 1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야지만 겨우 만날 수 있는 30대 후반 워킹맘이 된 나와 내 친구들. '멀리서 온 친구'를 빌미 삼아 일주일 전부터 남편에게 '밤마실'을 사전예고 하고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9시가 넘은 시간, 그날따라 뾰족함이 1도 없었던 내 마음과 같은 둥글 디 둥근 보름달을 보며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세상에! 매일 아침 숨 가쁘게 뛰어도 멀게 느껴지던 이 거리가 이렇게 짧게 느껴질 수가! 복작이는 지하철이 이렇게 훈훈하게 느껴질 수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 차 세상 모든 것에 감탄하는 사이 요즘 가장 힙하다는 힙지로에 도착했다. 이 골목 저 골목에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이 깔려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빼곡히 채우고 앉아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신기한 진풍경에 멍~ 한 것도 잠시,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다. 마치 잠실 야구장을 펼쳐 놓은 거 같았던 풍경 속에서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보냈던 나의 친구들은 한눈에 찾을 수 있었다. 

반가움이 하늘 끝까지 찼지만 시큰둥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 물색에 나섰다. 1년 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났던 것처럼 말이다. 어린 친구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게 그리고 우리에게 집중할 수 있게 나름(?) 조용한 실내에 자리 잡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지난 1년간의 수많은 일들이 각자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둘째 낳는다는 말은 취소. 너무 힘들어. 정말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이제 막 돌쟁이가 된 딸을 키우는 친구의 말에 나와 또 다른 친구는 고개는 끄덕이고 있었지만 입은 그러질 못했다. 

"힘들지. 근데 너는 이모님이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까 좀 편하지 않아?"

친구는 어묵탕을 떠먹으려고 말고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정색했다.

"이모님이 아이를 다 키워주진 않아. 어쨌든 엄마는 나니까 내가 해야 할게 훨씬 많지. 그분은 그저 조금 도움을 줄 뿐이야" 

아뿔싸. 세상에 태어나 가장 힘든 '오늘'을 보내고 있을 이 친구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한 걸까. 하지만 이미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재빨리 사과하려던 순간 또 다른 친구의 실수까지 보태지고 말았다. 

"얘(옆집언니)는 이모님 없이 일하면서 회사 다녔으니까. 너는 사업하니 자유롭기도 하고.."

오마이갓.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말들이 뒤엉킨 순간, 다행인지 불행인지 캐나다에서 함께 온 친구의 남편이 합석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초점은 이런 자리가 처음인 친구 남편에게 쏠렸다.    

3시간가량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밤마실을 끝내고 우리 모두 웃으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수다를 떨면서도 내내 가슴과 머리에 가득 차 있던 내 아이와 남편이 있는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길, 친구들을 만나러 올 때 봤던 그 달이 아까와 달리 참 외로워 보였다.

'왜 나는 그저 들어주고, 그저 토닥여 주지 못했을까..'

친구도 나처럼 오늘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텼을 텐데, 아침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걸었을 출근길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을 텐데, 저 달을 보며 너무나 행복했을 텐데.

나의 생각 없는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친구에게 하루를 견디는 작은 힘이 됐을 오늘의 시간이 오히려 매서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아 미안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태평이가 돌쟁이가 됐을 때 막 걷기 시작하며 활동성이 좋아지고, 자아가 생기면서 떼를 썼다.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오면서 얼마나 무수한 일들이 벌어졌던가. 그 모든 걸 태어나 처음 겪는 내 친구 역시 얼마나 당황스럽고 힘들까.

처음 해보는 육아는 누군가에게나 어렵고 아플 때가 더 많다. 처한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먼저 해봤다는 이유로 그의 힘듦을 섣불리 평가할 수 없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내가 먼저 해봤기 때문에. 무엇보다 나는 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봤던 '육아 꼰대', 그날 나의 행동은 딱 그랬다. 친구를 다시 만나려면 또 1년이 지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날 얼굴을 마주 보고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겠다. 육아 꼰대처럼 행동했던 지난 가을의 잘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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