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1학년인 딸이 학교 반 친구로부터 심한 욕설과 협박을 받은 사실을 알고 학교폭력으로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내려진 처벌은 가해 학생에게 달랑 세 줄짜리 사과문을 쓰게 한 것이 전부더라고요. 가해 학생은 아직도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데 일부 선생님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 정말 화가 납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이은지(40세) 씨
내년 3월부터 가벼운 학교폭력을 저지르면 1회에 한 해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기재를 유보할 수 있습니다. 가해 학생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고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법적 분쟁을 줄이겠다는 교육부의 설명인데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가해자를 위한 제도'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하 학폭법) 시행령 등 4개 법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지난 21일 밝혔습니다. 이번 개정은 지난 1월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대응절차 개선 방안'에 따른 것인데요.
현행 학폭법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경중에 따라 △1호(서면사과) △2호(접촉·협박·보복금지) △3호(교내봉사) △4호(사회봉사) △5호(특별교육)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9호(퇴학)까지 가해 학생에게 처분이 내려집니다.
이중 1호부터 3호까지는 비교적 경미한 정도의 폭력을 저지른 가해 학생이나 쌍방 폭력을 저지른 학생들에게 내려지는 조치인데요. 내년 3월부터는 1~3호 처분을 받는 경우 1회에 한해 학생부 기재를 유보해주는 것이죠.
2회 이상 1~3호 조치를 받을 경우에는 조치 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이전 조치를 포함해 학생부에 기재됩니다. 학생부 기재 유보 조치는 소급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기록은 그대로 남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해당 개정안에 대해 '가해 학생들에게 면죄부를 쥐여 주는 꼴'이라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성지성(39세) 씨는 "정부가 학교폭력을 뿌리 뽑으려는 의지가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며 "가해 학생에게 계속해서 솜방망이 처벌만 하니 청소년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는 김정은(36세) 씨도 "'경미한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모호하다"면서 "학교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느끼는 폭력의 정도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결국 가해 학생과 학교를 위한 법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교육부가 학생과 학부모 교원 일반 시민 등 2200여명을 대상으로 학생부 미기재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반대 의견이 59.8%로 찬성 의견(40.2%)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학교폭력 예방 및 재발방지 효과가 약화될 것이란 의견이 가장 많았고 △가해 학생 반성을 이끌어 내기 어려움 △피해 학생 보호 효과가 줄어들 것이란 의견이 뒤를 이었습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이번 개선안을 반대하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는데요. 교육부는 학교폭력을 은폐하려는 교직원과 학교폭력 이력이 2회 이상인 학생에게는 가중 처벌을 해 제도가 악용되는 것을 막겠다며 원안에 대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