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언니 육아일기]태평이의 배신 '이제와서 동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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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언니 육아일기]태평이의 배신 '이제와서 동생을?'
  • 임성영 기자
  • 승인 2019.11.2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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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카메라 속 피사체가 둘이 아니라 셋이면 더 행복할까?
내 카메라 속 피사체가 둘이 아니라 셋이면 더 행복할까?

"나는 동생 안 필요해"

태평이에게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런 대답이 나왔다.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한 건 혹시나 혼자라서 외롭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중에라도 아이가 동생을 원할 때 '네가 괜찮다고 했잖아'라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고 싶었던 것 같다. (역시나 나는 이기적인 엄마다)

동생이 없어도 되는 이유까지 들으면 나로서는 상당한 안도감을 느꼈다. 바로 '엄마랑 더 같이 있고 싶다'였다. 나의 결정을 합리화 하기 딱 좋은 구실이었다.

태평이는 어린이집에 일찍 다닌 덕분(탓?)인지 눈치가 빠르다. 아마도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동생이 생기면서 엄마의 우선순위에서 살짝 밀린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게다가 항상 동생에게 양보해야 하고 분명 동생이 잘못했는데 언니나 형이라는 이유로 혼나는 걸 보니 더 동생이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게다가 이 구실은 꽤나 강력했다. 시댁 어르신이 둘째를 왜 낳지 않느냐는 말에 '태평이가 싫대요'라고 하며 태평이에게 동의를 구하고 태평이가 "응. 싫어"라고 대답해주면 더이상 뒷말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둘째를 낳지 않는 책임을 대놓고 어린아이에게 떠맡겨 왔다. 

혹여나 외로울까 유치원 친구들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혹여나 외로울까 유치원 친구들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어쨌거나 덕분에 지난 3~4년간 둘째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살았는데 얼마 전 태평이가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엄마 이제 생각해보니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다 동생이 있는데 나만 없으니까 좀 그래. 그리고 외로워. 심심하고"

이럴 수가! 말 바꾸기에 나선 태평이 앞에서 당혹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외롭다니! 엄마 아빠가 이렇게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외롭다는 말이 나오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생각은 바뀔 수 있는 거고, 부모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 거니까.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니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 더 성장했나보다ㅎㅎ)

그날 밤, 남편에게 태평이가 한 말을 꺼냈다. 그는 '기다렸냐는 듯' 본인 역시 같은 생각이라며 태평이의 편(?)을 들었다. 남편의 주장은 이랬다. "첫째, 태평이에게 동생이 없으면 우리가 평생 놀아줘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둘째, 동생이 있어야 서로 나누는 걸 알아 이기적이지 않게 클 수 있다. 무엇보다 나중에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걸 태평이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아픔이다"는 거였다.

나는 즉시 반박에 나섰다. "우선 동생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나 역시 오빠가 있었지만 평생 나랑 놀아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둘째 무녀독남(혹은 무남독녀)이라고 해서 이기적이라는 건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오빠가 있어 오히려 늘 뺏긴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내걸 챙기려고 했다. 그래서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내 친구 김XX은 무남독녀라 모든 걸 다 받고 자라서 그런지 이타적 성향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빨리 죽지도 않을 거고 세상에는 혼자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것들이 있다" 고 말이다.

서슬 퍼런 내 눈빛에 더 이상 얘기했다간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편은 '둘째에 대해선 전적으로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이야기를 급히 마무리를 지었다. (역시 남편의 가장 큰 임무는 짜증난 아내의 총알받이 인가.. 급 미안함이.. 이렇게 또 더 성장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내 배에서 열 달을 품고 내가 아파서 낳고 내가 힘들게 모유수유 해야 하는데, 내 의견에 따라야지!'라며 속 편하게(?) 잠을 청했다. 

놀이터에 갔을 때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혼자 노는 태평이를 보면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가끔 동네가 아닌 놀이터에 갔을 때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혼자 노는 태평이를 보면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날 이후 태평이가 쏘아 올린 '둘째'에 대한 공은 계속 내 머릿속에서 튕겨 다녔다.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혼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을 때 그렇게 짠해 보일 수가 없고, 1년에 연락하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친정 오빠가 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 왔다는 얘길 했을 때 내 부모를 함께 책임질 동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며 의지가 됐다. 어느 날은 상갓집에 갔는데 텅 빈 눈으로 혼자 오도카니 서 있는 지인을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4남매가 서로 토닥이며 슬픔을 이겨내던 또 다른 지인의 모습과 비교되며 더 구슬퍼 보였다. 

그렇다고 둘째를 낳으면? 현실은 그리 따스하지만은 않을 거다. 다시 7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일단 임신 마지막 달 불편해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출산할 때는 정말 딱 죽을 뻔했다. 불타는 돌덩이 같았던 나의 가슴과 너덜너덜 해졌던 나의 XX. '모유수유-응가 처리-이유식 만들기-밥 먹이기-기저귀 갈기-빨래-청소-아기 재우기'의 무한반복 일과로 하루하루 살아가며 '나'를 찾아 헤매었던 육아휴직기와 그야말로 전쟁 같았던 워킹맘의 삶.

그나마 그땐 아이가 하나였지만 곱하기 둘이라.. 게다가 터울도 져서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게 다를 게 뻔하다. 누구의 의견을 먼저 들어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땅끝까지 한숨이 나온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은 이거다. 과연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나'의 페이지를 고이고이 접어두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페이지를 행복하게 써나갈 수 있을까?

'하늘이 주신다면 감사히 받아야 하는 것'이 새 생명인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 있다.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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